Tuesday, April 10, 2012

‘여자’라는 이름

                                                                     ‘여자’라는 이름


성경구절: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11-15)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 햄릿(Hamlet)을 보면, “Frailty, thy name is woman!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로다!)” 하는 대사가 있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그의 부왕이 죽은지 한 달도 채 못되어 모친 게투르드(Getrude)가 부왕을 독살한 그의 숙부 클라우디우스(Claudius) 품에 안기는 것을 보고 절망하여 외친 말이다. 여기서 ‘약한 자’로 번역된 frailty는 신체적 약함이라기 보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고, 도덕관이나 절개가 허약함’을 뜻하는 것이다.

사단의 대리자인 옛뱀이 먼저 이브에게 접근한 까닭도 여자가 남자보다 더 유혹에 빠지기 쉬웠던 까닭이었다. 남자는 먼저 흙을 취해서 만들어 모양에서는 덜 곱고 투박하지만 유혹에는 잘 넘어가지 않는데, 여자는 남자의 귀한 부분이요, 뼈중에 뼈인 갈비뼈로 만들어서 그 모양은 더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대신에 미혹에 넘어가기 쉬운 단점이 있었다. 하나님은 여자를 창조하시되 더 아름답고 좋은 작품으로 만드셨는데 여자는 선악과 한 개로 인하여 그 우위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우위성을 상실할 뿐 아니라 일생을 남자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도록 운명지어지게 되었다.

바울은 이러한 여자의 실수로 인한 지위의 격하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2장 11-15절에서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한다.

하와와 아담의 타락 후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내리신 징벌을 보면, 창세기 3장 16절에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3:17에서 “아담(=남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두 절을 비교해보면, 여자에게 내려진 징벌이 남자에게 내려진 것보다 더 가중함을 알 수 있다.

범죄함 없이 여전히 에덴동산에 있었더라면 해산의 고통없이 다른 방법으로 아마도 하나님께 청하여서 원하는 만큼의 자식을 얻을 수 있었을터인데, 해산의 고통과 함께 자식을 낳게 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처지로 낮아졌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쫓겨난 후 남자와 여자는 때로는 서로 미워하며 대립하는 관계가 되며, 때로는 그러면서도 서로 그리워하며 결합하기를 원하는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그들을 향하신 뜻은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서로 도울 배필이요,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육체적·정신적인 결합을 통하여 그들의 애정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커다란 창조의 섭리--주님과 하나되는 비밀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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