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10, 2012

마음의 눈을 밝히라

                                                               마음의 눈을 밝히라


성경구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7-19)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1-23절에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눈은 ‘마음의 눈’이다. 이 눈이 탐욕스러우면, 우리의 몸도 탐욕으로 가득 차게 된다. 마음의 눈이 어둡고 병들어 있으면 육신의 몸도 병들게 된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밝으면 우리의 육신도, 영도 밝음을 체험한다.

신수라고 하는 중이 몸과 마음에 대하여 한 편의 시를 벽에 써놓았다.

        몸은 보리나무요, 마음은 그 앞에 서있는 밝은 거울과 같다.
        항상 거울을 깨끗이 닦아서 먼지가 그 위에 붙지 않게 하라.

부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곧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마음을 깨끗이 하는 수련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이를 본 혜능이 또 한 편의 시를 그 옆에 쓴다.

        예전부터 보리나무도 없었고 밝은 거울도 서있지 않았노라.
        본래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어디에 먼지가 붙으리요?

신수는 정결한 마음을 갖기 위해 도를 닦는 것이 부처가 되는 깨달음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혜능은 ‘무심(無心)’이 부처의 길이라고 대답한다. 선과 악을 생각하는 마음 자체를 없애는 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선불교에서는 악을 생각하는 것이 제일 아래요, 선을 생각하는 것이 그 다음이요, 제일 위의 것, 곧 부처가 된 사람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일생을 좌선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깨달음의 경지에 스스로 도달할 수 있고 이때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결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께 더욱 의지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마음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생각하는 선한 마음이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다. 이 눈은 영의 눈인데 성령께 온전히 의탁할 때 비로소 열릴 수 있다. 우리 마음의 눈은 신수가 말한대로 마음을 깨끗게 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우리 가운데 영접하며 그분께 나의 중심을 드리는 결단의 순간으로써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아 알아서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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