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1, 2012

최고의 지혜

                                                                    최고의 지혜


성경구절: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는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7)


장자(壯者)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보면, “하늘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최고의 지혜에 도달한 사람이다.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자연 그대로 살아가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그의 지식이 아는 바를 가지고 그의 지식이 알지 못하는 바를 키워 나가니, 그렇게 타고난 수명을 다하면서 중도에 일찍 죽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바로 지혜가 훌륭한 탓이다”고 했다. 여기서 장자(壯者)의 하늘은 옥황상제, 혹은 하나님이라기보다는 자연 또는 천지만상의 조화에 가까운 뜻이지만,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라고 해석해도 뜻이 잘 통한다.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최고의 지혜에 도달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러한 사람은 없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은 모르더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뜻은 헤아려 알려고 노력하고 알지 못하더라도 말씀에 따르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있나 하면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는 일의 의도도 이해할 수 없고,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더욱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혼란케 하며 또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성도로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때로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나님을 잘 믿고자, 경건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데도 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윤리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축복해주시는 것 같음이 우리를 속상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한다.

하나님이 잘 믿는 사람들에게는 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다 확실하신 세상 축복을 내려주시면 그 하나님을 잘 믿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사람들의 이러한 바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계신지 안 계신지 묵묵무답(黙黙無答)이시다. 그래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일을 참으로 열심으로 자신의 일보다 더 돌보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다. 믿음을 갖되,  할 수만 있다면, 구원에 간신히 턱걸이 할 정도의 믿음만 갖기를 원한다. 이 세상 삶이 끝난 다음에나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칭찬이나 상급은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믿음이 과연 구원 받을만한 믿음인가?
구원 받을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죄사함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소망 중에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며 몸이 따라가든 따라가지 못하든 주님의 일을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히 인도하시며 돌보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셨지만 이스라엘의 믿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생활이 하나님을 위하여 진정으로 헌신하는 것이었나?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그렇지 못했음을 발견한다.
그들 가운데 분명히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공급하여 주시고 옷과 신발이 닳지 않게 하셨는데, 어찌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렇게 불신과 불경건의 모습으로 살아갔는가?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이 문제가 아니요, 인간 마음 가운데 항상 도사리고 있는 교만이 문제이다. 그 교만이 일이 되어짐의 과정과 종국을 결정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 사람의 판단대로 되어지지 아니할 때 이 미련한 인간은 지혜의 하나님을 향하여 불신(不信)의 원망을 발하고 하나님을 부인한다.

하나님이 항상 인간의 예상대로, 바람대로, 공평의 원칙대로 행하셔야지만 ‘참 하나님’이 되시는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모습을 보이실 때나 보이시지 않을 때나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이 존재해왔다. 이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낮추어 절대주권의 하나님과 그의 말씀 앞에 항상 순종하기를 원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순종은 하나님을 항상 잘 이해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모습을 밝히 보기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기에, 나의 뜻이 그분의 뜻과 다를 때에라도 그가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지금은 나의 형편이 고통과 슬픔이어도 그가 결국에는 나를 평안과 기쁨으로 인도하실 것을 알기에 그 말씀에 순종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세상 형편이 되어짐을 보면서 하나님을 얼마만큼 믿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일은 얼마만큼 감당하여야 할 것인가 계산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미련한 지혜자’를 원하신다. 미련한 지혜자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미련하게 보이나 하나님의 눈으로는 순종의 믿음이 있는 지혜자이다.
구약의 노아의 예를 본다. 그는 당시를 산 세상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다.
하나님께서 내가 정확히 얼마 뒤에 세상을 멸하시겠다고 미리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다만 그에게 “세상 끝날이 이르리니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창세기 6:14)고 명하셨다.
노아가 커다란 방주를 지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고 웃음꺼리로 삼았다. “이 미련한 놈아 왜 이 쓸 데 없는 일을 하느냐?”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보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방주를 지어갔다. 때로는, 가족들도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이 살던 곳이 바닷가도 아니고, 하늘이 청청하기만 한데 이 방주는 무엇에 쓸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노아 자신도 때때로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마음 속에 의문을 던지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백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결과가 무엇인가?
당장은 고통이요 답답함이지만, 묵묵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미련한' 우리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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