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1, 2012

화평케 하는 자의 복

                                                                 화평케 하는 자의 복


성경구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태 5:9).


산상수훈에서 “화평케 하는 자의 받을 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화평케 하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에베소서 2장 14-18절에서 바울은 “그(=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화평케 하는 일’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낮아지신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또한 십자가를 지셨다. 화평케 하는 일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낮아짐이 필요하다. 자신을 돌아봄에는 인색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함에는 관대함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게는 비판적이고 다른 사람을 대함에는 긍휼함이 필요하다. 화평케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할만한 조건들을 발견하여야 한다. 해서, 그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픈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로 더불어 화목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강도가 어느 집에 들어갔다. 강도가 집주인에게 권총을 겨누며 ‘손을 들라’고 말한다. 강도의 말에 주인은 한쪽 손만을 든다. 강도는 ‘다른 쪽 손도 들라’고 강압적으로 말한다. 주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오른 손에 신경통이 있어서 들 수 없는데요’라고 대답한다. 강도는 주인에게 “신경통이 있어요? 사실은 나도 신경통이 있는데...” 하고 그들은 밤을 새워서 그 신경통에 대하여 고통스러움과 치료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한 사람은 죽일 수 있는 입장이고 다른 사람은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입장이었지만, 신경통이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 그들을 가깝게 묶은 것이다.

우리 교우들은 서로에게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많은 공통점이 있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의 짐으로 인하여 항상 마음이 무거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의 구속자가 되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 인생항로에 선장이 되신다. 우리의 장차 가는 곳이 또한 한 방향--하나님나라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화평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옆 사람이 지쳐있을 때, 신앙이 뭐 저 모양이냐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에게 팔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워줘야 할 것이다. 때로는 그를 부축하고 함께 길을 가줘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에 이런 모습들이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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