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9, 2013

신앙생활은 두발 자전거 타기

                                                    신앙생활은 두발 자전거 타기


성경구절: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빌레몬 1:4-6)


  성도의 신앙생활은 두 발 자전거(Two-Wheel Bike)를 타는 것과 같다. 두 발 자전거를 탈 때 페달(pedal) 밟는 일을 멈추면 자전거가 쓰러지듯이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도들 가운데 믿음과 사랑의 교제하는 일을 멈추면 그 사람의 신앙은 정지하여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 만다. 그런데, 두 발 자전거 타는 사람은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서 페달을 밟으면 다시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지만, 기도와 믿음과 사랑의 교제라고 하는 페달 밟는 일을 중단하여서 쓰러진 사람은 다시 일어나서 그의 신앙의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아니, 매우 어렵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한 주일, 두 주일 거르다가 혹은 아예 몇 달, 일 년 이상을 쉬었던 사람이 다시 교회를 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경험해본 분들은 잘 알 것이다. 교회를 매주일 다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도 가운데 믿음과 사랑의 교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것을 처음 시작하는 일도 매우 힘들다. 그런데 이를 중단했다가 다시 재개함이 처음 시작하는 것 이상으로 힘든 것은 본인에게 왠지 쑥스럽고 가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생활의 두 발 자전거의 페달 밟는 것을 노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함이 필요하다.

믿는 사람의 믿음의 정진은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자세에서 가능하다. 나는 이만하면 됐지 하는 목회자나 성도에게는 신앙에 발전이 없다.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에서나 짐승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 해서, 예수님은 “뱀의 (간교함은 빼고)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함을 배우라”(마태 10:16)고 말씀하시고, “불의한 청지기의 (불의함이 아닌) 지혜롭게 셈하는 방법을 배우라”(누가 16:8)고 말씀하신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모두에게 신앙의 삶에 전진이 필요하다.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정기적으로 설교를 듣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며 보다 성숙한 목회자나 성도가 되기 위하여 내게 필요한 것을 더하기 위함이다.

Sunday, February 24, 2013

그리스도인의 표 된 것


그리스도인의




성경구절: “사도의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후 12:12)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도경(道經) 24):
      
      발뒤꿈치를 들고 서있는 사람은 오래 있을 없고 (企者不立)
      걸음으로 걷는 사람은 오래 걸을 없다 (跨者不行)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은 밝지 않고 (自見者不明)
      스스로 옳다 하는 사람은 돋보이지 않고 (自是者不彰)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이 없고 (自伐者無功)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自矜者不長)
      () 관점에서 이러한 것들은 찌꺼기 음식이요 군더더기 행동이라고 것이다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만물이 그것들을 싫어하는 바니 (物或惡之)
      그러므로 () 가진 사람은 이러한 것들에 처하지 않는다 (故有道者不處)

남보다 커보이고 싶고, 잘보이고 싶고, 나아보이고 싶고, 돋보이고 싶어서 발뒤꿈치를 드는 사람은 잠깐동안은 그렇게 보이도록 있을 있지만 오랫동안은 그렇게 있을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잠깐동안은 발뒤꿈치를 들고 자기 신앙이 좋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있습니다만, 이렇게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더더욱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이런 사람은 인정함을 받을 없습니다.
일시적으로는 걸음을 디딜 있지만 이런 사람은 오래 걸을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와 같이 걸음을 내디디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내 걸음을 멈춰버립니다. 계단을 계단 한꺼번에 뛰어오르려고 것이 아니라 더디게 보이더라도 계단 계단 차근차근 올라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의를 내고 자기의 세상 자랑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이리할 ,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드러나집니다.
저는 40세가 되어서야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30 동안 평신도(3년의 전도사) 삶을 살았기에 안수를 받은 초기에는 제가 목사란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제가 목사임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목사전용 검은 셔츠(Clergy shirt) 착용하곤 했습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는 것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즐겨 입기도 했지만, 옷을 입고 있을 때에는 목사로서의 몸가짐을 조심하고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사람에게 크리스천의 표시가 있습니다. 성경 여러 군데에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지만, 성령께서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을 보증으로 보여 주십니다(고후 1:22, 고후 5:5; 1:14, 4:30). 성령의 역사가 어떤 사람이 과연 크리스천인지의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 그에게 여러 가지 희한한 기사(奇事)들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몸에 닿은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낫고 악귀가 떠날 정도의 대단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행전 19:12).  그러자, 떠돌이 유대인 무당(=마술사)들까지 예수님을 믿지는 않으면서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능력을 얻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도 바울이 행하는 것을 보고,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악귀를 쫓아내는 (逐邪) 행하고자 합니다(행전 19:13). 스게와(Sceva)라고 하는 유대인 제사장의 일곱 아들들도 바울의 능력이 부러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를 쫓아내는 일을 행하는데 믿음이 없이 행하는 고로 악귀의 힘을 제압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악귀가 그들을 가지고 놉니다. “예수도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행전 19:15) 하며 악귀들린 사람의 몸으로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억제할 그들은 상하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표시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16 17-18절에서 예수님은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만 이런 일이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크리스천에게도 이런 일들이 나타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믿는 마음으로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간구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안에서 나타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크리스천의 표가 나타나야 합니다. 나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의심하는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고자 하지 않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교회를 찾아 나오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표적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평신도로서 학원목회를 하거나 교회의 직분자의 생활을 때에는 저에게 말에 있어서나 행함에 있어서 거치는 것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후에는 여러 가지로 말하는 일에서나 행하는 일에서 자제하고 조심을 하게 됩니다. 이는 목회자의 말과 행동은 쉽게 그리고 왜곡(歪曲)되어서 비난과 비판의 표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은사로나 열매로든지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 여러분의 신앙의 삶이 달라집니다. 전에는 부담스럽던 교회생활이 이제는 기쁨과 즐거움의 교회생활이 되고, 전에는 여러분의 삶의 변두리에만 머무시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삶과 마음의 중심에 좌정하심을 느낄 있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