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1, 2012

마음을 열어주는 찬송들

                                                         마음을 열어주는 찬송들


성경구절: “너는 예루살렘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ת)하라.” (에스겔 9:4)


찬송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준다. 같은 찬송이지만 전에는 내가 감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떤 특별한 상황 가운데 동일한 찬송을 들을 때 그 찬송을 통하여서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강한 감동을 주시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오래 전의 이야기다. 장로교단의 노회 모임에 참석했는데, 시간 중에 한국인 2세로서 미국장로교 총회 대표단에 참여하여 북한을 방문하고 오신 K 장로님의 북한 방문 보고를 듣게 되었다. 그는 뉴욕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는 분인데 그가 보고하는 북한 실정에 관한 이야기는 내가 이미 다 아는 것이라 별 흥미거리는 아니였으나 보고 마지막에 그분이 북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곳 교인들과 같이 불러 은혜를 받았다는 찬송가 410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체구가 왜소하신 장로님이 피아노를 직접 치며 찬송을 부르기 위해 건반에 손을 얹는다. 그분의 세련된 전주에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고 그가 1절과 4절을 한국어로 찬송할 때 그가 북한 교회 교인들과 함께 이 찬송을 불렀을 장면이 연상되어 내게 한없는 성령의 감동이 임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공산정권의 독재 가운데 있을 때고, 세상이 주는 슬픔과 고통 중에 있을 때도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쓸 데 없던 자이던 나를 사랑하셔서 구속하시고 구원해 주신 까닭이다.

한국에서 아직 평신도로 신앙생활을 할 때 교회학교 부장으로서 교사들과 아이들과 함께 신체 장애-지진아 보육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의 표정은 어두웠으며 우리 일행의 방문을 조금도 반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보육원 아이들이었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과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열었을 때 그들의 그늘지고 일그러진 표정 뒤에 감추어져 있던 아름다운 속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둘러앉아 함께 찬송하고 경험한 주님의 사랑을 서로 간증했다. 찬송과 대화로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헤어질 때쯤 되어서는 그대로 떠나기가 아쉬워 그들을 다음 주일 저녁예배에 교회로 초대하여 특송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그들이 부른 찬송은 세상의 어떤 유명한 합창단의 노래보다도 아름답고 은혜스럽게 내 귀에 들려왔다.

        죄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 둘 수 없도다.
        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으네
        나는 이 세상에 정 둘 수 없도다

그들의 찬송에 눈시울이 뜨거워옴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는 형제와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소년, 소녀도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주님이 함께 하시며 사랑의 손으로 고통받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계시리라. 예수님은 바로 저들에게 처소를 예비해 주시기 위해 하늘로 먼저 올라가신 것이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올 때 쯤에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결단을 하고 기도하는 중에 나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은 찬송이 404장이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찬 404장 1, 3절)

나같이 무익하고 죄많은 인생까지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워 그 사랑을 돌려드리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찾고 그 일을 증거하고 감당하고자 할 때 이것이 찬송을 통한 진정한 은혜요 감격이다.

버지니아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찬송가 한 곡이 미국에 와서 주님을 처음 믿기 시작한 한 대학원생에게 격렬한 감동을 주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나의 사모하는 선한 목자는 어느 꽃다운 동산에
        양의 무리와 늘 함께 가셔서 기쁨을 함께 하실까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여 음성 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예수뿐일세(찬 82장 1, 2, 5절)

부부 모두가 서울 문리대 생물학과를 나왔는데 아직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성령의 강한 감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의 창자까지 시릴 정도로 느끼게 하였다. 요란한 집회에서가 아니라 이제 성경을 공부하기 위하여 조용히 준비찬송을 하는데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으셨다. 그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그는 그것을 주체할 수 없어 했다. 그가 이제 시작하여 1년이 지난 그 공부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그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듯 보였던지 어느날 나에게 상담을 청하였다. 밤새도록 그 부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강하게 체험하여 일생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한 사람이라도 왜 여전히 학문을 계속함이 필요한지 설득하였다. 후에 그는 장로가 되었고 부부가 모두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같은 학교의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다.

찬송을 통하여 우리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사랑과 은혜를 접하게 되지만, 그러나, 찬송이 우리 신앙생활의 긍극적인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여는 한 방편이다. 그러므로 겸손하고 열린 심령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더 잘 알고자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