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10, 2012

미련한 지혜자

                                                                  미련한 지혜자


성경구절: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세상에 속해 세상을 살다 보면,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웬지 손해(損害) 보는 기분이다. 아니, 세상을 지혜롭게 살려면 남들이 가는 길로 가되 남들을 앞질러 가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성경은 남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웬지 손해인 것 같은 좁은 길로 가라고 하고, 남들을 앞질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길을 양보하고 희생하라고 말씀하신다. 해서, 이러한 구절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되, 세상 지혜에 있어서도 세상 사람들보다 앞서고 싶다. 세상 일에서 알면서도 속임을 당하거나 손해보는 일은 얼뜨기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리라.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단군신화에 호랑이와 곰이 등장한다. 호랑이는 지혜로운 것 같으나 참을성이 없고, 곰은 미련한 것 같으나 참을성이 있었다. 두 짐승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은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느날 하늘에서 신(=환웅)이 내려와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들이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은 ‘100일 동안 굴 속에 거하면서 마늘로만 연명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며칠을 견디던 똑똑한 호랑이에게는 이 일이 도무지 몰상식(沒常識)한 일이요 이렇게 한다고 인간이 될 것 같지 않아 그만 굴에서 뛰쳐나와 버린다. 그러나, 미련한 곰은 인내를 가지고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잘 견딤으로 환웅이 약속한 대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해서,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어머니, 웅녀(熊女)가 되었다고 한다. 성경이 주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4,500년경 전에 노아(Noah)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다. 맑은 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500세 된 노아에게 나타나셔서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되, 그 길이가 300규빗(=137미터), 넓이가 50규빗(=23미터), 높이가 30규빗(=14미터)되게 하라고 하신다. 요즈음의 기술로도 이만한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선소의 많은 인부들을 사용하더라도 1년은 족히 걸릴 터인데, 어찌 하나님께서 500세 노인(老人)인 노아에게 이 일을 명하실 수 있단 말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청청한 날에 산 중턱에서 방주를 만들고 있는 노아를 모든 사람들이 ‘정신나간 자’라고 조롱(嘲弄)한다. 노아의 아내도, 세 자식들도, 세 자부(子婦)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일을 거드는 대신에 방관자(傍觀者)의 자세만을 취할 뿐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노아에 대해서,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7:5)고 기술하고 있다. 노아는 100년에 걸쳐서 방주를 완성하였고, 방주의 완성을 기다렸던 하나님은 40 주야(晝夜)동안 땅에 비를 쏟아부으시고, 1년동안 지상에는 물이 마르지 않았다. 결국, 노아를 조롱하던 모든 패역한 세대의 사람들은 죽음을 당하고,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들과 자부들은 노아를 이해하지 못하였었지만 노아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덩달아 구원에 참여할 수 있었다.

  믿음의 생활을 잘 할려고 일시적(一時的)으로 애쓰는 사람은 꽤 있다.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기로 결심하지만, 생각만큼 기도의 능력과 응답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 이내 중단한다. 새벽기도에 참석하면 믿음이 자랄 것같아 새벽기도에 나가 보지만 기대한 것 만큼 그렇게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데 뭐하러 졸리운데 교회까지 나가서 기도하냐?” 마음 속에서 유혹한다. 새벽기도에 기대를 갖고 몇 번 나왔다 하더라도, 이내 그 방법이 마음에 안들고, 믿음이 자라는 것 같지 않아 중도에 그만 두는 사람도 있다.
어떤 다른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순종하고 인내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順從)과 인내(忍耐)를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순종하고 오래 참음이 미련한 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를 지혜(智慧)로운 것으로 보신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자로 여김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지혜로운 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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