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1, 2012

가르치는 즐거움

                                                           가르치는 즐거움


성경구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 6:6)


  어느 날 석가모니가 영산(靈山)에서 중생(衆生)들에게 불교의 진리를 설파한다. 석가모니는 연꽃 한 송이를 들어 중생에게 보인다. 아무도 그 뜻을 몰라 잠자코 있는데, 오직 가섭 존자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미소짓는다. 석가모니는 가섭이 그 뜻을 참으로 깨달았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깨달음은 설명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설명하고자 하면 오히려 그 진리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가섭 존자에게 말한다. “내게는 정법안장(政法眼藏: 올바른 진리를 갖추고 있음)과 열반묘심(涅槃妙心: 열반상태의 미묘한 마음)과 실상무상(實相無相: 변화하는 생멸의 세계를 떠난 진리)과 미묘법문(微妙法門: 진리로 가는 미묘한 길)이 있는데, 문자를 통해 표현치 않고 교리 밖에 별도로 전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마하 가섭에게 부촉하노라.”
  가섭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뜻을 마음으로 이해한 것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유래되었고 또한 이 사건에서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가섭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깨달은 것은 그의 천재성에서 기인한 까닭도 있었겠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그의 마음의 원함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뛰어난 제자의 수가 70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 자공(子貢)은 재능(才能)이 뛰어났고, 안회(顔回)는 덕(德)과 학문(學問)이 뛰어났다.
  논어 공야장(公冶長) 편에 보면 어느 날 공자가 자공에게 묻는다. “자네와 안회 중에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자공이 대답한다. “제가 어찌 안회와 비교될 수 있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아는 데 불과합니다.”
공자가 말한다. “그렇다. 자네는 안회만 못하지. 나와 자네 모두 안회만 못하다네.”
  공자가 그렇게 끔찍이 사랑한 안회는 그러나 애석하게도 41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공자는 옹야(雍也) 편에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회상한다. “안회는 학문을 좋아했고, 화가 나도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옮기지 않았고, 잘못을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었건만 불행히도 명이 짧아 일찍 죽어 지금은 없으니, 그 외에는 학문을 좋아한다는 제자를 아직 듣지 못하노라.”

  공자가 선생으로서 사랑하는 제자 안회를 잃었을 때의 슬픔이 컸던 것은 그만큼 안회가 공자의 학문을 배우기를 힘쓰며 선생인 공자를 따랐기 때문이다. 안회가 공자의 모든 제자 중에서 학문이 뛰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달리 학문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스승이었지만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에 대해서 시샘하기보다는 그의 학문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맹자(孟子)가 말하는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도 ‘천하의 영재(英材)를 얻어 그를 훌륭한 인재로 만들어 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제자로서 우리가 연구하는 학문은 바로 주님이다. 가섭이 불교의 깨달음에 우월하고, 안회가 유교의 학문에서 뛰어났던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교의 학문에서 뛰어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우리 학문의 대상인 주님을 사랑으로 대할 때 가능하다. 세상의 학문은 머리로 깨달아 진보가 있지만, 주님을 아는 학문은 가슴으로 깨달아 진보에 이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목회자에게도 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교인들이 있는데,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힘쓰며 그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성도들이다. 선생으로서 목회자의 역할은 다른 학문이나 예·체능계의 선생들과 다르다. 다른 분야의 경우에 선생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주장이나 학설 혹은 기풍을 승계하여 발전시키는 일이지만, 목회자가 바라는 것은 교인들이 자기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전해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나는 나의 설교를 듣고 나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교인들이 나보다 더 그리스도를 많이 사랑하고, 더 그리스도를 아는 데(경험하는 데) 뛰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리할 때, 나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즐거움이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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