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1, 2012

의심의 안개 걷히고

                                                                의심의 안개 걷히고


성경구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진리에 대한 갈구가 있는 사람은 그 진리를 만나는 순간 희열(喜悅)을 느낀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진리를 발견하는 비결은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학문은 ‘의심의 눈,’ ‘비판의 눈’을 갖고 있어야 발전이 있지만, 믿음에는 이러한 것이 장애요인(障碍要因)이 된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 엠파이어스테이트(Empire State) 빌딩이나 씨얼스(Sears) 빌딩 꼭대기에서 뉴욕이나 시카고 시를 내려다보면 그 도시의 모양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개가 낀 날은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서 시내를 내려다보아도 그 모습을 헤아려 알 수 없다. 안개가 짙으면 짙을수록 더욱 보기가 어렵다. 우리의 눈이 의심이나 교만이나 욕심의 안개로 가려져 있을 때 우리는 보기 원하고 발견하기 원하는 믿음의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이미 목사로 안수 받고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조지아(Georgia)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선교하지 못하고 세월만 허비하다가 어느 날 밤중에 도망치다시피 하여 영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배의 갑판에 서있는 그의 마음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었다. 폭풍이 배를 뒤흔들 때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모라비안 교파의 크리스천들이 부르는 찬송소리가 들렸다. 그 찬송이 웨슬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했다. 그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목사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운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이 풍랑 속에서도 저렇게 평안할 수 있을까? 동일한 예수님을 믿는데 왜 나에게는 저런 기쁨과 평안이 없을까?’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그는 목사로서의 사명을 생각하며 번민했다. 어느 날 그는 런던의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거리를 걷고 있다가 조용한 찬송이 흘러나오는 교회의 문을 들어섰다. 무명의 목사가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고 있었다. 이를 듣고 있던 웨슬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믿음의 진리를 발견한 그는 그 작은 교회 한 구석에 앉아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다녔고 대학 시절 홀리 클럽(Holy Club)을 조직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엥글리칸(Anglican) 교파의 목사로 안수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엘리트 목사였지만 이전까지 그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없었다. 그는 머리로만 크리스천이었지 가슴에는 신앙이 없었다. 그의 나이 35세에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체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감리교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다.

요한 웨슬리를 거듭나게 한  「로마서 강해」를 쓴 루터는 16세기 독일 신부 출신의 종교개혁자이다. 그가 아직 신부로 있을 때 그의 마음은 평온이 없었다. 아무리 고행을 해도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로마에 있는 성당의 계단을 팔꿈치와 무릎으로 기어서 오르락내리락 해도 죄는 여전히 자신 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그에게 한 말씀이 들어왔는데 로마서 1장 17절이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로써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단행할 수 있었다. 우리의 구원은 선한 행동과 고행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요, 면죄부를 사는 것으로도 아니요, 오직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깨달음은 일찍이 바울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바울은 바리새파에 속한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지만, 그에게는 죽음 앞에서 집사 스데반이 누렸던 기쁨과 평안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는 인간의 구원이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귀히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그에게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도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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