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1, 2012

잃은 자를 찾은 하나님의 기쁨

                                                      잃은 자를 찾은 하나님의 기쁨


성경구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 15:10);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누가복음 15:32)


아리조나 주에서 생긴 일이다. 아버지와 함께 사냥하러 갔던 아이가 길을 잃어버려 캠프를 찾지 못하고 6일 밤낮을 헤매다가 마침내 캠프에서 32마일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돌아온 아이를 껴안고 흐느껴 울며 소리친다. “내 아들을 다시 찾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그러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기절하였다.
1천여 명을 동원하여 아들을 찾고 있던 아버지도 전화로 아들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만다. 잃었던 아들을 찾은 그 부모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밖에서 잘 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큰애와 둘째 애가 없어졌다. 이곳 저곳을 헤매며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러다가, 같이 놀만한 아이들의 집을 노크하며 우리 애들을 못 보았느냐고 물어본다. 몇 아이를 거쳐서 어떤 아이가 맞은 편 동의 누구네 집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도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 집을 노크했을 때 ‘무슨 일이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빠꼼히 내다보는 아이들을 발견하였을 때는 순간 화가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이내 아이들을 찾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어떤 아들이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먼 곳으로 떠났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며 그는 타지의 삶에서 지치고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부모님이 과연 자기를 받아줄지 몰라서 부모님께 편지를 띄웠다. 편지 내용 중에 “만일 저를 받아주실 뜻이 계시면 집 앞에 있는 오크나무(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매 놓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기차가 마을 가까이로 접근해 간다. ‘만일 부모님이 노란 리본을 나무에 매달지 않으셨으면 어떡하나?’ 기차가 마을에 거의 다 도달할 때 이 사람의 마음을 초조와 불안으로 어쩔 줄 모른다. 기차가 모퉁이를 돌아 이 사람의 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 앞의 오크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그 나무를 바라보는 아들은 기쁨으로 넘친다. 나무 가지마다 온통 노란색의 리본으로 뒤덮여 있었다. 노란 리본을 하나나 둘만 매달아 놓으면 혹시 아들이 리본을 못 볼까봐 아버지는 나무에 온통 노란 리본을 매달아 놓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녀들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 같다.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을 모를까봐,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할까봐 하나님은 온통 당신의 뜻을 알게 하시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녀를 얼마나 기뻐하시는가 성경 곳곳에서 표현하신다.
하나님 밖에 있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세 가지 비유를 들고 계시다.
                                                   
첫째는 일백 마리를 양을 갖고 있던 사람이 한 마리 양을 잃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말씀하신다. 아직 아흔 아홉 마리가 그 사람의 수중에 있지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귀하게 여기고 그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또 찾은즉 찾은 기쁨을 벗들과 함께 누리기 위하여 잔치를 베푼다.

열 드라크마(=데나리온과 같은 가치의 헬라 화폐단위, 일꾼의 하루 품삯)를 갖고 있던 여인이 집안에서 한 드라크마를 잃었을 때 이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안 구석구석을 쓸며 찾는다. 그리고 찾았을 때 벗과 이웃을 불러 그들과 함께 찾은 기쁨을 누린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타지에 나가 더 큰 세상을 배우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유산으로 주기로 작정한 몫을 미리 달라고 떼를 쓴다. 아버지는 순순히 둘째 아들에게 그의 몫을 내어준다. 그러나, 세상 경험이 없고 물정이 어두운 둘째 아들은 곧 그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남의 집에 돼지를 치는 머슴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집 주인이 야박하였던지 먹을 것도 배불리 먹지 못하여 돼지가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생활을 하게 된다.

주린 상태로 살아가던 둘째 아들은 생각다 못하여 그가 떠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아버지 집을 찾아가는 둘째 아들의 마음은 두근두근 하다. 객지에서의 생활이 자신 있다고 그렇게 큰소리 치고 나왔는데 이제 거지의 몰골로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사정하려고 아버지를 찾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연로한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초라한 몰골을 보자마자 둘째 아들인줄 알아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했다(눅 15:20). 그의 모든 잘못은 묻지도 않고 다만 잃어버렸다가 돌아온 아들을 찾은 기쁨으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푼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회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슙[שׁוב]은 ‘돌아오다’라는 의미임)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누가복음 15장 32절에서 아버지는 불평하는 큰아들에게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스스로 정한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을 향하여서도 오래참음으로 기다리신다. 그들이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쁨으로 껴안으실 것이다. 로마서 10장 21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할 때,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한다.

아직 하나님 밖에 있는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아직 당신의 마음 밖에 계신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마음 중심으로 영접할 것이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회개함과 주님을 영접함으로 인하여 기뻐하실 것이며, 당신은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즐거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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