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1, 2012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


성경구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세기 1:28, 31)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6일에 걸쳐서 창조하실 때 자신의 창조하신 것에 대하여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을 일곱 번 반복하십니다(1:4, 10, 12, 18, 21, 25, 31).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궁창(=하늘, 공중)을 지으신(“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시기 위하여”: 7절) 두 번째 날에 대해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탈무드는 아마도 공중의 권세를 사탄에게 주실 것이기에(엡 2:2 “공중 권세 잡은 자”) 그 표현이 빠지지 않았나 추정합니다.
그러나, 지구의 형성--땅과 바다--과 땅 위에 풀과 채소와 나무를 창조하신 셋째 날과 땅 위에 생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여섯 째 날에 대해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각각 두 번씩(1:10, 12; 1:25, 31)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살게 하실 땅과 땅 위에 피조물을 창조하심을 기뻐하셨다는 증거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심에는 그 기쁨이 특별하시기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31절)

둘째 날을 제외한 각 날의 창조에 대하여 “보시기에 좋았더라” 란 표현이 일곱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된 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만드신 세상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자유롭고, 죄와 허물의 문제가 없고, 오직 즐거움과 기쁨만이 넘쳐나는 장소로 계획되어졌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첫 번째 사람--아담과 하와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동산, 낙원(파라다이스: παράδεισος)은 축복과 기쁨의 장소였습니다. 낙원은 blissful, 즉 더없이 행복한 또는 기쁨이 가득 찬 장소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에게 허락하신 낙원은 늙음이나 아픔이나 슬픔이나 병듦이 없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뱀이 그들을 미혹할 때 아담과 하와는 거기에 넘어가고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지고의 기쁨과 즐거움의 장소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에게 생노병사의 고통과 슬픔이 찾아들었습니다. 썩지 않을 것으로 창조되었던 것이 썩어짐에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롬 8:21).
그러나,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본래 허락하셨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경륜(=오이코노미아, 인간구원, 엡 1:9)의 때가 이르매 사람들을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한 1:14).
이 사건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9-10절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인간구원)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은 우리들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기쁨을, 하나님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전에 아담과 하와의 타락함으로 잃어버렸던 낙원(=Lost Paradise)을 다시 되찾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The New Heaven and the New Earth)'이 그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서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심으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도래될 기쁨의 장소를 소망 중에 기다리되 우리는 현재 이 세상에서도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은 기쁨의 근원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쁨의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기쁨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기쁨을 함께 기뻐하시며,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쁨의 찬송과 감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습 3:17).

교회는 주님의 기쁨과 즐거움을 소개하며 제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기쁨의 근원이신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며 주인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상실한 기쁨의 원인과 기쁨의 장소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우리의 기쁨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는데, 우리에게 기쁨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목회자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쁨이 있고, 성도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하며 찬송하는 기쁨이 있는 교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위에, 기쁨을 상실하고 여전히 암울한 가운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제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blessings) 받기를 좋아합니다. 찬송가 가사에도 있듯이(1장, 28장)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말하는 축복은 기쁨을 동반합니다. 기쁨(bliss)이 없는 복(blessing)은 참된 축복이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이 번창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는데 어떤 연유(상실, 고통)로 인하여서 그 사람에게 기쁨이 없다면 이는 진정한 축복은 아닙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복은 기쁨이 따릅니다. 시편 1편 1절에 나오는 복(“복 있는 사람은”)--아슈레이(blessed, happy)--은 "그 마음에 평안(행복, 기쁨)이 계속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기쁨과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교회에 함께 하시는데 우리에게는 기쁨과 복이 넘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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