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4, 2012

목사님이 우는 이유

                                                               목사님이 우는 이유


성경구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워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행전 20:31)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계신 목사님을 안다. 그 분은 설교단 위에 설 때마다 눈물을 흘리신다. 마음씨 좋은 시골 아저씨처럼 투박하게 생기신 분이 설교하시다 말고 눈물을 흘리시다가, 눈물이 너무 많이 흐를 때면 뒤돌아 서서 손수건까지 꺼내셔서 엉엉 우신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분 신상(身上)에 무슨 일이 생겼나?’ 짐작해본다. 그러나, 자기같이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목사로 부르시고, 단 위에 세우시고 말씀을 증거하시게 함에 감격하여 우신단다.

  모름지기, 남자는 일생(一生)에 세 번만--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울어야 한다고 했는데, 목사가 된 다음에 눈물을 흘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목사가 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구하여주신 것에 감격하여, 나에게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심에 감사하여 흘리는 체험적인 기쁨의 표현으로서의 눈물이었는데, 목사가 된 다음에는 기쁨의 눈물보다는 안타까움의 눈물이 더 많은 것 같다.

  성도들의 믿음이 어린아이처럼(=child-like) 순수한 것이라면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마냥 자라지 않아 어린아이와 같은(=childish) 상태라면 이는 목회자를 안타깝게 할 것이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함은 기쁨인데, 설교단 위에서 마음이 열려있지 않은 성도들을 내려다보는 것은 고통(苦痛)이리라. 목사님이 운다--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바로 증거하지 못한 것 같아서 울고, 둘째는 말씀을 들은 성도들의 삶의 변화가 더딤이 마음 아파 운다.

  목회자와 성도들은 특별한 관계이다. 목사가 그 교회를 떠났다고 해서 목사-성도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좋지 않은 모양으로 떠났다 하더라도 목사는 자기가 사역하던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잘 성장하고 교회가 주님 안에서 번성하기를 바라고, 성도들은 그 분이 다른 곳에서도 주님의 좋은 목회를 감당하기를 바랄 것이다. 바울서신을 통하여, 우리는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이러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고린도 교회, 갈라디아 교회, 에베소 교회, 빌립보 교회, 골로새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등에 편지하는 바울이 비록 그 교회들을 떠나 있으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그들을 그의 기도 가운데 늘 기억하고 있음을 본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리면 권면의--때로는 사랑의 눈물과 꾸지람이 담긴--편지로 그들을 훈계한다.

  눈물을 흘리고 설교를 마친 날이면 기분이 야릇하다. 예배 후에 어느 성도님이 물어보신다: “목사님,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 예,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다른 성도님이 말씀하신다: “목사님, 왜 그러세요. 제발, 울지 좀 마세요.” “예, 미안합니다.” 그러나, 다 큰 사람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런 말씀을 하는 성도님이 야속하다. 속으로 그분에게 당부한다: “목사가 울지 않게 제발 믿음생활 좀 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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