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4, 2012

톨스토이의 문제

                                                             톨스토이의 문제


성경구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 8:31-32)


  “나는 5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생애가 변하였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을 갈구(渴求)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들이 좋지 않게 보이고 이전에 재미있던 것들이 별로 재미있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것들이 나에게 중요해지고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는 삶이 허무(虛無)하게 생각되었다. 나의 인생관(人生觀)과 가치관(價値觀)이 뒤바뀌는 것이 곧 예수 믿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이는 19세기말 러시아의 대 문호(文豪) 톨스토이(Leo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가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한 말이다.

톨스토이는 41세에 이미 불후의 대작「전쟁과 평화(War and Peace)」(1869)를 출간하고, 후에 「안나 카레리나(Anna Karenina)」(1877) 등을 발표함으로써 불세출(不世出)의 인물이 되지만 소피 베르(Sophie Behrs)와의 결혼생활(1862년 결혼)은 극도로 불행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죽는 날까지 그녀는 나의 목 주위를 누르는 한 바위일 것이다. 나는 나의 목을 누르고있는 이 바위로 인해 익사(溺死)당하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라고 함으로써 그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부담스러웠던지 극명하게 말하고 있다. 아내와의 불화(不和), 가족들과의 마찰(摩擦)과 특히 내면의 자신과의 갈등(葛藤)이 톨스토이로 새로운 진리와 평안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60세쯤에 복음서를 읽다가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크리스천이 되었는데,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의 삶이 이로써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표현한 대로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대문호로서 불후(不朽)의 명작을 남긴 그의 60년의 인생보다도 크리스천으로서 남은 생을 산 20년이 더 귀하고 값진 것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이후에 완벽주의의 삶을 살고자 한다. 사냥을 포기하고, 담배와 술을 끊고, 육식을 하지 않고, 성적으로 금욕생활을 하기로 작정한다. 그는 71세에 쓴 그의 마지막 대작 「부활(Resurrection)」(1899)의 수익금 전체를 당시 짜르(Czar)에 의해서 박해를 당하고 있던 재세례파(Anabaptists) 단체인 두코보르(Doukhobor)를 돕는 일에 사용한다. 또한 예수님의 산상수훈 해석으로부터 나온 그의 비폭력 철학은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등 비폭력을 주장하는 후세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톨스토이는 크리스천이 된 초기의 기쁨은 다 없어지고 여전히 불행한 삶을 살아갔다. 그당시 부패한 러시아 정교회에 비난을 퍼붓다가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한 그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결국 그는 명예도, 가족도, 재산도, 자신의 정체성도 잃어버린 채 마지막 평안을 찾아서 기차를 타고 한 수도원으로 향하다가 중한 병으로 한 기차역(Astapovo)에 내리게 되고 역장의 집에서 82세의 생을 마감한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삶 동안 톨스토이는 ‘복음의 이상대로 살수만 있었다면... 내가 그럴 수만 있다면’ 하는 독백과도 같은 소망을 한 순간도 놓지 못한 사람이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복음서에서 완벽한 인간상--하나님의 이상을 따르는 삶을 산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을 때 그는 분명히  크리스천으로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의 남은 20년 여생을 통하여 그러한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완전을 향한 성화의 삶이 불완전한 인간의 어떠한 의지와 노력으로도 가능치 않음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완전으로 향한 삶을 추구(追求)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사라졌던 것이다.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나의 부족을 끊임없이 고백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부족한 모습을 내가 용납해야 한다. 나의 부족을 이미 하나님께서 용납하여 주셨다. 내 스스로가 온전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교만이며, 거기에는 주님이 역사하실 공간이 없다. 한편으로는 성화의 삶을 살기를 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고백할 때, 그때 비로소 성화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우리를 성령께서 도우사 그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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