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4, 2012

진짜 예수, 가짜 그리스도

                                                     진짜 예수, 가짜 그리스도


성경구절: “너는 예루살렘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ת)하라.” (에스겔 9:4)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시록 14:1)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 (계시록 13:16-18)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계시록 14:9-11)


오래 전 사회 초년병으로서 직장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같은 과 동료 두 명과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주위를 살피며 다가오더니 조용하게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진짜 외제(外製) 선글라스가 있는데 한 번 보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우리를 여러 말로 유혹한다. “박 동선이 한국에 들어올 때 꼈던 안경도 있습니다.” 이 말에 동료중 한 사람이 ‘한 번 보자’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좌우를 살피면서 가방 속에서 선글라스들을 꺼내 보인다. 대충 살피던 우리는 그 외제품(?) 상인에게 다짐해본다. “이거, 진짜 틀림없는 거죠?” “거기 적힌 상표를 보시면서도 그러세요, 참.” “얼맙니까?” “원래 가격은, 하나 당 십 만원이 넘는데, 하나에 2만원씩만 주세요.” 우리는 보통 안경 값(그 당시는 만원이하였다)에 비하면 비싸지만 그 상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진품을 참으로 싼값에 구하는 것이라고 속으로 쾌재(快哉)를 부르면서 두 개 혹은 세 개씩 샀다. 나도 거금 4만원을 옆 친구에 빌려서 두 개를 구입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우리는 다른 동료들에게 자랑하기 위하여 선글라스들을 내보였다. “이거, 진짜 외제 맞아?” 샘이 난 다른 동료들이 면밀히 점검작업에 들어갔다. “야, 이 친구들아, 이 spelling 좀 봐라. 이런, spelling도 제대로 모르냐?” “여기 r이 하나밖에 없잖아? 진짜는 r이 두 갠데, 니 그것도 모르나?” 하고 핀잔을 준다. “여기, 이것도 가짜 아니냐? 진짜는 z로 끝나는데 이건 s로 끝나지 않았냐?” 하면서 우리가 산 선글라스들이 모두 가짜, 유사품들임을 얄밉게도 잘도 지적해준다. “이런 건 몇 천 원을 달라해도 안 산다.” 엘리트 청년들인 척, 진품을 구별할 줄 아는 척, 외제의 spelling은 당연히 아는 척 허세를 부린 우리 세 명이 허술한 차림의 잡상인에게 보기 좋게 속아넘어가 가짜를 진짜로 알고 흥분하여 두, 세 개씩 무분별하게 산 것이 참으로 분하고 억울하지만 어찌 하랴.

그런데, 이런 일이 교회 안에는 더욱 더 많다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많은 경우에 가짜와 진짜가 구별이 잘 안 간다. 아니, 가짜가 진짜보다 오히려 더 멋있고 그럴듯하게 보일 때가 많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보았다’고 하면 진짜-가짜를 판별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초청하여 집회를 연다. 어떤 권사가, 어떤 장로가, 어떤 목사가 희한한 은사를 체험했다고 하면, 어떤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면서 와 몰린다. 진짜 예수와 가짜 예수를 구별할 줄 모르고, 진짜 예수를 간증하는 집회보다 가짜 예수를 간증하는 집회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까닭은 어찜인가? 진짜 예수를 간증하는 사람은 주님을 자랑하는데 반하여, 가짜 예수를 드러내는 사람은 자신을 자랑함을 알아야 하리라. 쉐익스피어의 어느 작품에도 있듯이, 진짜는 화려하지 않은 반면, 가짜는 화려하다는 사실을 유의함이 좋으리라.

교회 안에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가짜 예수들이 많은가 하면, 성경에도 가짜 그리스도(=적그리스도)가 나온다. 19-20세기에만도 세계적으로 20명 가까이에 이르는 사람이 자칭 재림예수라고 주장하였는데 그 중 거의 절반이 영광스럽게도(?) 한국사람 중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가짜 예수들이 한동안은 많은 추종자들을 얻음을 본다. 그것이 가짜로 밝혀지기까지는 어떤 때는 참으로 긴 세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가짜 그리스도인 적그리스도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첫 3년 반 동안은 자신이 재림한 그리스도인양 행세한다. 그러다가, 후 3년 반에 그 본색을 드러내고 그(=적그리스도)의 표(=mark)를 받게 하는데 이 짐승의 표의 숫자(=초대교회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로 보았던 ‘네로 황제’를 헬라어로 풀이한 숫자의 합계)가 666이다. 이 666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한 가지 재미있는 해석은 이것이 진짜 예수의 숫자(=‘예수’의 헬라어에 해당하는 숫자로서 위경서 Sibylline Oracles 1.328-329에서 유래함)인 888의 유사품이란 것이다. 얼뜻 보아 가짜 그리스도(=적그리스도) 짐승의 수 666이나 진짜 예수의 표 888이 구별이 잘 안 간다.

세상과 타협하는 삶을 살므로 이마나 오른 손에 짐승의 표인 666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어린 양, 예수의 표인 888(혹은 다른, 진짜 예수의 표)인줄 알고 사는 사람이 많다. 이 두 표시가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짐승의 표는 주님의 날에 심판의 표적이요, 어린 양의 표는 하나님의 보호요 구원의 표적인 까닭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세상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한 나머지 가짜 예수, 가짜 그리스도를 좇아가면서 진짜 예수, 진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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